《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리뷰

“건강 격차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건강 불평등의 핵심 원인으로 ‘차별’과 ‘혐오’, 그리고 그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를 꼽습니다. 그는 이를 ‘웨더링(weather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웨더링이란 반복적이고 장기적인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가 세포 수준에서부터 마모되어가는 현상을 말합니다. 피부색, 성 정체성, 사회적 배경 등으로 일상적인 차별을 겪는 사람일수록 이 마모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입니다.

책은 흑인 버스 운전사 제이슨 하그로브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는 코로나19 초기에 마스크 없이 손님을 상대해야 했고,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생을 마감합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감염이 아니라, 오랜 사회적 스트레스의 결과였습니다. 건강 문제조차 구조적인 불평등의 결과라는 주장은 놀랍지만, 책을 읽다 보면 납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 리뷰

한국 사회에서 ‘웨더링’은 없을까?

이 책은 미국 사회를 배경으로 쓰였지만, 한국 독자들에게도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는 책입니다. 한국은 다인종 사회는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한 차별 구조를 가진 사회입니다.

예를 들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보다 훨씬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건강 위험에 더 많이 노출되어 있습니다. 산업재해는 하청 노동자, 일용직, 외국인 노동자에게 훨씬 빈번하게 일어나고, 그들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돈이 없어서만이 아닙니다. 사회가 그들을 ‘덜 중요한 존재’로 여겨왔기 때문입니다.

또한 여성, 특히 경력단절 여성이나 싱글맘이 겪는 건강상의 어려움도 ‘개인의 나약함’이 아니라 구조적 차별의 산물입니다. 아이를 돌보며 본인의 건강을 챙길 여유조차 없는 수많은 여성들, 야간 노동에 시달리는 청년 배달노동자들, 학교 밖 청소년들 역시 같은 스트레스 속에서 신체적으로 마모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건강한 삶’은 공정한 사회에서 비롯된다

제로니머스 교수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건강을 위해서는 공공정책이 차별을 단절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개인에게 절제와 자기관리를 요구하기 전에, 사회가 누군가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보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책에서 소개하는 사례 중 특히 인상 깊은 부분은, 차별을 이겨내고 성공한 사람일수록 더 빠르게 웨더링에 노출된다는 점입니다. 사회적 이동을 위해 무한한 경쟁과 압박을 견뎌낸 이들이 오히려 건강을 잃는 현실은 한국에서도 익숙한 장면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도 정규직을 찾기 힘든 청년들, 고시촌에서 수년을 버틴 공시생들, 대기업에 들어가도 업무 스트레스로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직장인들. 성공조차 스트레스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사회에서, 우리는 건강할 수 있을까요?

《불평등은 어떻게 몸을 갉아먹는가》는 누구에게 추천할까?